단골 바 사장님 말마따나 예전엔 아저씨들이 Mo’ Better Blues를 즐겨 듣는 꼴이 그렇게 싫었어요. ‘레미솔라시~’가 나오면 갑자기 옅은 미소가 드리우며 사지가 느슨해지는 모습이 별로였달까요. 근거 없는 자기만족에 젖어드는 헐거운 모습이, 가져본 적 없는 과거에 대한 향수 같은 게 보였기 때문이었을 겁니다.
마침내 그 감성이 뭔지 조금은 알 것 같아요. 각박한 나날 중 여유가 찾아온 찰나에 느끼는 임시적 자기 만족감이었거나 완전연소하지 못한 나날들에 대한 보상 받을 길 없는 아쉬움이었거나. 그런 걸 음악이 흐르는 순간이나마 조금 더 붙들고 싶은 마음이었을 거라 짐작해 봅니다. 누구에게나 남에게 들키고싶지 않지만 들키고마는, 가끔 낡은 주머니에서 꺼내보는 자기최면에 유용한 순간들이 있겠죠? 그것이 끝나는 시점은 어김없이 쓰라립니다만… 무뎌지는 게 죽기보다 싫었는데, 이렇게 늙는건가봉가. 헐겁고 비속하게.
다들 각자의 자리에서 각자의 사연이 있었겠죠? 모두 고생 많으셨어요. 새해라고 무슨 좋은 일이 갑자기 생기겠습니까만, 다만 조금은 더 의연하고 씩씩하게 살아내길 저를 비롯한 모두에게 바라요. ‘지나가니 뭐 별 거 아니었잖아!’라며 떠올릴 올해의 무수한 일들을 무사히 통과해 왔듯이.
조금은 버벅대고 허술해도 괜찮습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셔요!
Marx to Engels (1861): “May I wish you in advance every happiness for the New Year. If it’s anything like the old one, I, for my part, would sooner consign it to the devil. Salut. Your K. M.”
중학생 때 국어 시간이었나 문학 시간이었나 어느 산문을 읽을 때였는데 선생님께서 이런 서두는 독자의 흥미를 북돋아 글을 읽게끔 만들기 위한 것이라고 해설해주신 적이 있다. 문제는 그 산문이라는 게 실은 일기였다는 데 있었다. 그리고 일기에 독자를 초대할 동기가 있을 수 있나? 짐작건대 그 선생님의 독단은 아니었고 주어진 교과 목표에 그런 식으로 해제하도록 되어 있었던 것 같다. 말 그대로 해설을 위한 해설을 만들다 보니 그렇게 됐겠지. 여하간 당시 어린 나의 마음으로는 이 글은 일기인데 웬 독자? 라고 생각해서 수업이 끝나고 선생님께 의아하다며 여쭸더니, 마음 좋은 선생님은 잠시 자료를 뒤적거리며 고민하시다가 네 말이 맞는 거 같다고, 이건 잘못된 설명인 거 같다고 대답하셨다. 그런데 사람들이 페북, 인스타, 트위터 등등에 ‘공공연’하게 일기를 쓰는 걸 보고 있노라니, 실은 그 해설이 진리를 선취한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이 글부터도 잡스런 일기인데 공공연하게(?) 작성되고 있지 않나. 선생님이 옳았다.
말라가 여행 내내 다상수면에 시달렸는데, 루벤에 돌아오자마자 밤 10시에 눈을 감고 새벽 6시에 개운하게 눈을 뜨는 일상이 거짓말처럼 복구되었다. Y의 추천으로 구매한 디펜히드라민이 그저께 도착했는데… 수면 패턴은 정말 알다가도 모르겠다. 그러다 문득, 여행하면서 나도 모르는 사이에 많이 신경 쓰고 긴장하며 지내고 있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별생각없이 《경도를 기다리며》라는 드라마를 챙겨본다. 회차가 지날수록 대사의 어색함이 도가 지나쳐 견디기 힘든 지경까지 되고 있지만 뭐 이게 요즘 K-로맨스물의 방향인가?한다. 8회까지 방영한 지금, 시리즈 전체를 꾸준히 관통할 것처럼 보였던 사무엘 베케트의 “고도를 기다리며”의 흔적은 온데간데 없고, 모든 면에서 뻔하디 뻔해진다는 인상만 강해진다. 비단 이 드라마만 그런 건 아니겠고, 그냥 이런 문법이 많지 싶다. 사실 좋아하는 원지안 배우가 주연이라는 이유로 시작했을 뿐이라, 아마 여기까지일 것 같다. 차라리 평소에 주구장창 돌려보는 메드맨이나 어바웃타임을 한번씩 더 보는 게 답이다. 역시 아는 맛이 무서운 맛… 다만 8회 마지막 부분에 갑자기 햇빛 듬뿍 머금은 말라가가 등장해 잠시 어리둥절해졌다.
여행 마지막 날 공항으로 향하기 전에 잠깐 짬내서 퐁피두 센터를 둘러봤다. 규모는 크지 않았지만 명성에 걸맞게 익숙한 작품들이 많았는데, 유독 샬로트 페리앙 가구들이 왜 그렇게나 많았는지 조금 의아했다. 설렁설렁 둘러보다가 카트린 말라부를 우연히 마주쳤다. 말을 걸어볼까 잠깐 고민했지만, 역시 그런 성격은 못 되나보다. 아마 Y가 남겨두고 간 선물을 전부 다 해치웠더라면, 그땐 망설이지 않았을지도 모르겠다. 새삼, 시간이 꽤 흐른 지금까지도 인생의 여러 새로운 경험을 Y 덕분에 하고 있다는 사실에 조금 웃었다.
김수로는 한 예능에서 부친의 장례식을 치르는 중에 웃음보가 터지고 말았던 순간에 대해 이야기한 적이 있다. 장례식장에 사람이 뜸해진 새벽 무렵 외조부께서 불러다가 네가 사람 새끼냐고 꾸짖었고, 그제서야 대성통곡을 했다는 에피소드였다. 나중에 보니 웃음을 참느라 허벅지를 때리고 꼬집어서 피멍이 들어 있었다고 그랬다. 김수로는 이걸 웃긴 일화로 전달하지만, 그토록 슬픈 날 자신이 그랬다는 자책감이 아직도 해결이 되지 않는다고 눈물을 글썽이며 덧붙인다. 나는 이것이 책임질 수 없는 일을 책임지려고 하는 인간의 굴레라고 생각한다. 정확히 설명할 수 없지만, 과연 김수로가 그날 웃지 않았다고 해서 자책감이 없었을까? 인간은 자신이 도저히 어찌 할 도리가 없었던 일에 대해서도 기어코 책임감을, 죄책감을 느끼고 만다. 친구와 일상적으로 약속을 잡았는데, 친구가 약속 장소에 오다가 변고를 당했다고 생각해 보자. 거기에 내 책임은 없다. 나는 무구하다. 하지만 계속 곱씹고야 마는 것이다. 그날 만나기로 하지 않았더라면, 그 장소가 아니었더라면, 그 시간이 아니었더라면, 등등. 이것은 이성의 논리도, 감성적인 책임도 아닌 무언가다: 이유를 발명해서라도 기필코 책임지려 하는 것. 아마 김수로는 저런 식이 아니었더라도 도저히 풀리지 않는, 그래서 무한한 책임의 구석을 찾아냈을 것이고, 그럼으로써 스스로 징벌을 내렸으리라고 생각한다. 아주 사소한 것조차 충분히 그런 구실이 될 수 있다. 누군가를 상실하고 나서야 애틋해진다는 건 그런 것이다. 설령 함께 지낸 그 모든 시간이 기쁨으로 충만했을지라도, 지나간 시간 전체가 회한으로 물들고 만다. 그런데 그런 충만함은 좀체 없다. 그러니까 차라리 다른 누군가가, 이를테면 외조부 같은 타자가 꾸짖어 주는 것이 티끌만큼 나은 셈이다. 자책의 회로를 간신히 외재화할 수 있기 때문이다.
One Battle After Another를 아주 즐겁게 봤다. 영화를 보고 나니까 적절한 한국어 번역어는 “끝없는 전투”보다는 “설상가상”일듯하다. 제일 스타인 디카프리오를 러닝타임 내내 쩌리로서 구심점으로 만든 것부터가 어처구니없고 유쾌하다. 요 근래 본 영화 중 리듬(특히 도주 시퀀스의 운율)이 가장 여운에 남았고 아직도 체이스 인피니티에게 빠져있다. 그 외에도 여러가지 생각이 드는데… 일단 서로 다른 방향의 운동이 격렬하게 교차하는, 그래서 어느 순간 자신의 원래 방향조차 배반해버리는 PTA 특유의 산만한 운동들이 가장 정련된 형태로 펼쳐진다는 것만 짚고 싶다.
서양 철학을 공부하는 이들 중에 문제의식마저 완전히 서구적이게 되는 경우를 종종 본다. 나도 예외라고 하긴 어려울 것이다. 그건 스스로 판단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니까. 누구나 마음속 깊이에선 자기야말로 ‘중도’다. 여기에는 아무래도 어쩔 수 없는 면이 있지만… 문제는 그 경화의 정도다. 요즘 말로다가 XXX무새(데리다무새?)가 되는 것, 말과 글이 뿌리 내릴 토양의 차이에 대해 맹목적이게 되는 것. 그 반대편에는 국학(?)으로의 급격한 회귀가 있다. ‘비서구성'(e.g. 한국성)을 본질로 치켜세우고 비서구적인 근원 쪽으로 갑작스럽게, 깊이 개종하는 것. 특히 근래의 각종 K-XXXXX 붐은 이 “연어적” 회귀를 손쉽게 정당화하게끔 한다. 둘 모두 몰역사적이기에 경계해야 한다. 실로 힘든 것은 사이에 머무는 일이다.
가. 날씨가 본격적으로 어둡고 우중충해지기 시작했다. 쓰레기를 버리러 나갔는데 비가 왕창 쏟아지고 있었으나 걸음을 되돌릴 수 없어서 어쨌든 쫄딱 맞고 계단 타고 방에 돌아 왔더니 비가 그쳐 있는 하늘을 보는 심정에 대해서 논하시오.
나. 오묘한 긴장감을 안은 채 매주 분석철학 세미나에 참석한다. 나에게 비교적 익숙한 이른바 ‘프랑스철학’ (이 명명 자체가 ‘일본사’라는 범주가 그렇듯, 실제로는 존재하지 않는 민족적 단일성을 사후적으로 구성한다는 점에서 늘 문제적이지만)에서 중요시되는 엄밀함과는 또 다른 결의 엄밀함을 이곳에서 체험하게 된다. 흔한 오해와 달리, 언뜻 언어의 유희를 적극적으로 장려하는 듯 보이는 프랑스철학 역시 발화되는 단어 하나, 개념 하나의 의미를 끝까지 밀고 나갈 것을 요구한다는 점에서 결코 느슨하지 않다.
다. 파리 여행 중 친구들과 잠시 떨어져 혼자 새소년 공연을 보러 갔다. 신보에 대한 우호적인 마음이 너무 컸던 탓인지, 아니면 이미 한국에서 여러 번 실물로 봐왔던 탓인지, 기대만큼 크게 즐기지는 못했다. 2021년 예스24홀 공연을 제외하면 새소년은 늘 락 페스티벌 무대에서만 봐왔는데, 이번 파리 공연의 전체적인 구성도 그 무대들과 꽤 닮아 있었다. 황소윤의 폭발적인 기타 솔로를 중심으로 한 곡들이 주를 이루다 보니, 어느 순간부터는 모든 곡이 비슷하게 들리기 시작했다. 연달아 연주된 서너 곡은 얼개가 이상할 만큼 닮아 있었다. 가사를 넘어서는 호소력이 있다 하더라도, 해외 관객을 전혀 의식하지 않을 수는 없었을 테고, 그 결과 내가 특히 좋아하는 잔잔한 곡들은 자연스럽게 밀려난 게 아닐까 짐작해본다. 어쩌면 그냥 내가 늙어서, 예전만큼 공연을 즐기지 못하게 된 걸지도 모른다. 실제로 막바지에는 나도 모르게 ‘제발 앵콜 없이 깔끔하게 끝내고 빨리 호텔 가서 뻗을 수 있게 해주세요’라고 속으로 빌고 있었다. 그래도 1집 첫 곡을 듣지 못한 건 많이 아쉽다.
라. 역시 환경이 사람을 만든다고, 루벤에서 보낸 1년을 뒤돌아보면 나는 분명히 현상학에 물들었다. 사실 후설과 현상학은 애초에 루벤을 택한 중요한 계기였고, 스스로도 그 전통에 깊이 잠기기를 어느 정도는 원하고 있었다. 보다 정확히 말하자면, 영미권 학계에서 데리다를 흔히 ‘프렌치 하이데거’로 호명하는 방식과는 달리, 그를 한 명의 후설리언으로 – 후설의 독자이자 제자로 – 새기고 싶었다. 그러기 위해서는 후설 현상학을 제대로 배워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러다 보니 지금의 관심사는 자연스레 철학사, 특히 데카르트 연구로 기울어 있다. 이러다 정말 나도 모르게 플라톤까지 거슬러 올라가게 되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에 아찔하다. 다만 현상학적 전통에 점점 더 물들수록, 한때 중심에 두었던 동아시아학, 맑스, 푸코, 포스트식민주의로부터 서서히 멀어지고 있다는 감각이 따라붙는다. 그 어긋남에서 오는 멀미가 좀처럼 가라앉지 않는다. 갑작스러운 위기감에 사이토 고헤이를 다시 펼치고, 서마학 세미나를 통해 『자본론』을 다시 곱씹고 있지만, 예전만큼 몸에 붙지 않는다는 인상을 지울 수 없다. 지금으로써는 역량의 한계를 인정하고, 당분간은 (무려) 데카르트 하나를 소화하는 것만으로도 벅차다는 사실을 받아들이는 수밖에 없을 것 같다. 그럼에도 나오키 사카이의 저작에서는 여전히 한 줄기 빛을 본다. 돌이켜보면 데리다, 현상학, 후설, 동아시아학, 포스트식민주의, 푸코, 맑스에 대한 관심은 모두 학부 시절 사카이의 글을 탐독하던 경험으로 되돌아간다. 언젠가는 이 서로 다른 물길들이 다시 만나 상호적으로 물들이기를 바라면서, 오늘도 데카르트를 곱씹어 읽는다.
Is this your new site? Log in to activate admin features and dismiss this message